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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찬양예배

생명의 풍경으로

2026-04-12

에스겔 37:14 성령의 충만함과 기도로 영적 생명을 회복합시다.

빠른 요약

  •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의 존재를 깨우고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으로 인도합니다.
  • 성경은 에덴동산, 시내산 등 아름다운 영적 풍경과 에스겔 골짜기의 죽음의 풍경을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 영적 아름다움과 죽음의 차이는 하나님의 선하심(토부)이 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인간은 자기 기준의 선을 쫓기 쉬우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선하심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성령님의 충만함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 한국 교회의 위기는 건물이나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아름다운 풍경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목회자는 교회가 주전자 물이 아닌 폭포수 같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상태를 깨우기 위해 성도들이 은혜의 샘물을 갈망하며 모여야 합니다.
  • 우리가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고, 사람과 재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 성령의 역사와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에는 초신자와 기존 신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됩니다.
  • 나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전심으로 부르짖는 기도의 군대가 될 때 참된 부흥이 시작됩니다.

타임라인 요약

하나님의 선하심이 만드는 영적 풍경

설교자는 제주도 갈대밭의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평안과 존재의 자각을 나누며 서두를 엽니다. 성경에는 에덴동산, 시내산, 변화산 등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아름다운 영적 풍경이 등장합니다. 반면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골짜기는 생명이 끊어진 영적 죽음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이 두 풍경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 즉 히브리어 '토부(Tob)'의 유무에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그 선하심이 임할 때 비로소 생명과 아름다움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하와나 사울처럼 자기 기준에 좋은 것을 선이라 착각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내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은혜의 샘물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분별하기 위해서는 우리 힘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겪는 위기는 외적인 규모의 축소가 아니라 영적 아름다운 풍경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교회가 일시적인 은혜에 그치지 않고 폭포수와 같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끊임없이 경험하기를 매일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금요철야 예배를 통해 은혜의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했으나, 많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이를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합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 영적 맛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은혜의 샘물을 사모하며 기도의 자리에 모일 때 영적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만을 구하며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되는 참된 부흥의 역사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모여 성령의 충만함을 구할 때, 은혜의 시냇물은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폭포수로 변화됩니다. 교회의 부흥은 사람을 모으거나 재정을 채우는 외적인 노력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집중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설교자는 심방 예배 중 성령의 강력한 터치로 완악했던 영혼이 눈물로 변화된 간증을 전하며, 목회와 사역의 핵심은 오직 성령의 역사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연로한 한나여전도회 회원들을 향해 나이와 상관없이 교회를 지키는 강력한 중보기도의 군대가 되어 달라고 권면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할 때 초신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기존 신자들은 영적 생명력을 얻어 자연스러운 전도가 일어납니다. 오직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없음을 기억하고, 모든 성도가 기도의 자리에 나와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삶 속에서 간증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