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예배·설교
주일·찬양·수요 예배의 말씀을 다시 듣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Sermons
주일·찬양·수요 예배의 말씀을 다시 듣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수요예배
2026-06-03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증명된 존재로 만족을 누리는 삶 (마태복음 22:21)
존재 증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누리는 참된 만족
마태복음 강해의 마지막 시간으로, 설교자는 성도의 정체성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이미 완성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성도가 이미 받은 은혜를 반영하며 살아갈 때 맺히는 가장 확실한 열매는 바로 '만족'입니다. 이 만족은 삶의 멈춤이 아니라, 더 이상 세상의 인정과 비교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영적인 해방감과 자유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면 끊임없이 말을 많이 하거나 사람을 만나며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내면은 늘 불안과 공허함에 시달리게 됩니다. 설교자는 과거 전도사 시절에 복음의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해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했던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또한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며 자기 증명을 하려 했던 한 권사님과의 일화를 통해, 복음이 우리를 점령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삶을 살게 됨을 경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 안에서 이미 우리의 존재 증명이 끝났다는 복음의 진리를 깊이 배우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진리의 앎에서 하나님을 누리는 사명의 삶으로
우리가 이미 존재가 증명되었음에도 자꾸만 거짓된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신앙적 원리와 행하신 일들을 지식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정보나 성경 공부 수준에서 멈추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삶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예배와 기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충분히 누리는 단계입니다. 이 누림은 내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누릴 때 현실의 거대한 문제들은 작아지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우리 내면에 몰려오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이 주신 일과 사명을 감당하는 단계로, 이때의 사명은 자기 증명을 위한 도구가 아닌 기쁨의 통로가 됩니다. 설교자는 누림이 사명보다 항상 선행되어야 하며, 이 세 가지 원리가 순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참된 만족이 일어난다고 강조합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그리고 자녀의 정체성
본문 마태복음 22장 15-22절에서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평소 원수 같은 관계였음에도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합하여 교묘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물으며 예수님을 정치적 혹은 종교적 올무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답으로 세금 문제를 영적인 예배와 정체성의 문제로 전환시키십니다. 동전에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듯,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함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설교자는 아빠의 목회에 해가 될까 봐 친구들의 갈등을 억지로 화해시키려 애쓰며 근심하던 초등학생 딸의 모습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을 나눕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아둥바둥하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기보다, 아버지가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처럼 종의 마음으로 일하며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이미 십자가 사랑으로 증명된 자녀로서 절대적인 평안과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