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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설교
주일·찬양·수요 예배의 말씀을 다시 듣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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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2026-01-21
막힌 길을 뚫고 오신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는 삶 (마태복음 1:16)
족보를 통해 폭로되는 인간의 한계
마태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족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세대 간의 끊임없는 연결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인간의 한계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영광스러운 상승기,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의 죄로 인한 하락기, 그리고 포로기 이후 요셉까지의 철저한 암흑기라는 세 시기로 나뉩니다. 암흑기에는 성경에 기록조차 없는 무명인들이 등장하며 왕족의 혈통은 끊어지고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비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인물인 요셉 역시 왕궁이 아닌 나사렛이라는 시골에서 가난한 목수로 살아가며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밑바닥을 대변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로 인해 길이 막혀버린 인간 역사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 역시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막히고 답답한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결국 이 족보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막힌 절망의 한계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막힌 길을 뚫고 오신 예수님의 개입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소망을 찾을 수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막힌 길을 친히 뚫고 역사 속에 개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5절까지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끊임없이 무언가를 낳고 이어가려는 능동태의 역사가 39번이나 반복됩니다. 그러나 16절에 이르러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기록하며 주어가 요셉에서 마리아로 바뀌고 문장이 수동태로 전환됩니다. 이는 인간의 혈통과 노력으로 구원자를 만들어낼 수 없음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인생 역시 스스로 아둥바둥 노력해도 안 되는 한계의 시점에 하나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능동적인 노력이 멈추고 하나님의 주권에 이끌리는 수동적 신앙으로 바뀔 때 비로소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되어지는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삶을 경험할 때 우리는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은 참된 평안과 만족을 누리며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선물 예수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막힌 담을 허물고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인간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예수와 임마누엘이라는 두 가지 이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불행의 근원인 죄와 저주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구원의 능력이자 어둠의 영을 쫓아내고 닫힌 문을 여는 왕적인 권세입니다. 임마누엘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비참한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동행과 견딤의 약속입니다. 이 두 이름은 구원과 동행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예수의 이름으로 죄의 사슬을 끊고 일어선 우리가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광야 같은 세상을 두려움 없이 걷게 만듭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낙심하거나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과 보혈의 권세를 입술로 담대히 선포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예수의 이름을 가르치고 선포하게 했을 때 수많은 가정의 어둠이 떠나가고 회복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 강력한 영적 무기를 꺼내어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가정과 일터의 어둠을 물리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축원합니다.